아래 글은 지식재산뉴스에 기고한 워트인텔리전스 윤정호 대표의 글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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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정호 (워트인텔리전스 대표이사 변리사·미국변호사·지식재산의 룰을 바꾸는 설계자) 워트인텔리전스를 창업해 IP 데이터 인프라(키워트, keywert)와 AI 기술을 결합한 인텔리전스 플랫폼(keywert insight)을 만들고 있습니다. 3,000여 곳의 기업·기관과 함께한 경험과 1억 7천만 건 규모의 특허 원문 정제 과정에서 본 IP 산업의 변화를 이 시리즈에 담습니다.
밤 열한 시의 특허법인 사무실을 상상해 봅니다. 내일 아침까지 정리해야 할 선행기술 자료가 수백 건입니다. 같은 시각, 어느 기업 연구소의 연구원은 발명신고서 양식 앞에서 한 시간째 첫 문장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실력을 펼치기까지 거쳐야 하는 절차가 너무 길 뿐입니다.
지난 네 번의 글에서 구조와 시작점, 사람이 맡을 일과 맡길 일, 그리고 사무소가 관리해야 할 대상을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사무소가 바뀌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에는 그 안에서 일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사무소가 바뀐 뒤에 남는 질문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하루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대체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IP 업계에서 AI 이야기가 나오면 늘 따라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일이 사라지는 것 아닙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위로였습니다. AI는 도구일 뿐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공허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답은 위로가 아니라 구조에서 나옵니다. 대체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를 둘러싼 절차입니다. 검색하고, 요약하고, 양식에 맞춰 옮기는 일. 그 일들은 전문성이 아니라, 전문성이 제 일을 시작하기까지의 기다림이었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기업의 기술 가치는 연구실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특허의 가치는 출원 과정에서 새어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늦어진 선행기술조사 한 번, 급하게 채운 명세서 한 장, 놓친 권리 범위 한 줄. 발명은 훌륭했는데 권리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일은 이 업계에서 낯선 일이 아닙니다. 이 새는 물줄기를 막는 방법은 문서를 더 빨리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가의 판단이 들어가는 시점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변화는 이미 와 있습니다. 공개된 보도만 놓고 봐도 국내 대기업 가운데 특허 AI를 연구원 전원이 쓰는 전사 도구로 들인 사례가 나왔고, 그 움직임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번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 검색 도구 하나를 바꾸는 일로 여겨지던 것이, 이제는 연구개발 전 구간에서 일하는 방식을 다시 짓는 일이 됐습니다. 달라진 것은 도구가 아니라 도구가 맡은 일입니다.
시간을 세 칸으로 나눠 보십시오
사람이 맡을 일과 맡길 일이 어떻게 나뉘는지는 세 번째 글에서 다뤘습니다. 이번에 묻고 싶은 것은 그 다음입니다. 그 구분이 끝난 뒤, 당신의 시간은 어디에 쓰이고 있습니까? AI가 수백 건의 후보를 추려주는 시대에도, 추려진 목록 앞에서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기술을 몸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청구항 한 줄에 어떤 구성요소를 넣고 뺄지를 결정하는 판단에는 수많은 심결과 심판의 경험이 실려 있습니다. 기계가 그 기다림을 없앨수록 남는 것은 판단이고, 그 판단의 추는 오히려 무거워집니다.
지난 글에서 사무소가 관리하는 대상이 무엇이냐가 사무소를 달라지게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같은 물음이 개인에게도 동일합니다. 전문가가 관리하는 시간이 무엇이냐가 전문가를 달라지게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 드리고 싶은 말은 경고라기 보다는 제안입니다. AI를 걱정하는 시간에, 자신의 시간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를 먼저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검색에 쓰이는 시간, 서면에 쓰이는 시간, 판단에 쓰이는 시간을 나눠 보십시오. 셋 가운데 마지막이 아닌 곳에 밤이 새워지고 있다면, 그것은 성실함의 문제가 아니라 배치의 문제입니다. 도구는 이미 준비돼 있습니다. 남은 것은 도구를 쓰는 사람이 자기 일의 중심이 어디인지를 다시 묻는 일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
어느 사무소의 밤인들, 어느 연구실의 밤인들 가볍지 않겠습니까.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사람은 없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 시간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는, 한 번쯤 물어볼 때가 됐습니다.
전문가의 시간은 어디에 쓰이고 있습니까. 그 답이 바뀌는 것이 AX의 완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렇게 비워진 시간에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판단의 시대에 전문가가 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