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시리즈 1 | 특허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AI는 가장 늦게 만나는 이유

IP 업계만 유독 멈춰 있는 이유. 의지도, 속도도 문제가 아닙니다. 구조가 문제입니다.
AX 시리즈 1 | 특허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AI는 가장 늦게 만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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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지식재산뉴스에 기고한 워트인텔리전스 윤정호 대표의 글 전문입니다.

저자: 윤정호 (워트인텔리전스 대표이사 변리사·미국변호사·지식재산의 룰을 바꾸는 설계자) 워트인텔리전스를 창업해 IP 데이터 인프라(키워트, keywert)와 AI 기술을 결합한 인텔리전스 플랫폼(keywert insight)을 만들고 있습니다. 3,000여 곳의 기업·기관과 함께한 경험과 1억 7천만 건 규모의 특허 원문 정제 과정에서 본 IP 산업의 변화를 이 시리즈에 담습니다.

한 대형 특허법인 대표가 얼마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분기 안에 AX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음 문장이 본질이었습니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 장면은 한 사람의 고민이 아닙니다. AI를 써야 한다는 압박은 명확하고, 범용 AI를 개인적으로 써본 경험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조직 차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그 앞에서 멈춰 있습니다. 제조도, 금융도, 의료도 다 뛰어나가는데 IP 업계만 유독 그렇습니다.

왜 IP 업계는 이 지점에서 머무는가. 저는 그것이 의지의 문제도, 속도의 문제도 아니라고 봅니다. 구조의 문제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3,000여 곳의 IP 조직과 일하고, 1억 7천만 건 규모의 특허 원문을 학습 가능한 데이터로 정제하는 과정에서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했습니다. 그 경험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대형 특허법인이 AI TF를 만드는 진짜 이유, 이미 실행에 들어선 조직과 아직 시작하지 못한 조직 사이에서 빠르게 벌어지고 있는 격차, 그리고 거창한 준비 없이 실무자 한두 명이 조직 전체의 일하는 방식을 바꾼 사례들. 이번 시리즈를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개인 AI와 조직 AX는 다른 종(種)이다

생성형 AI가 특허 명세서를 요약해준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롭지 않습니다. 변리사 개인이 그것을 쓰는 데에 회사의 결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한 사무소의 100명이 같은 선행기술 조사를 같은 품질로 해내려면, 청구항 해석의 일관성·검색의 재현성·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가 시스템 차원에서 설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개인의 AI 활용’과 '조직의 AX’를 가르는 분수령입니다. 개인 단위에서는 자유로운 도구가, 조직 단위에서는 통제 가능한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IP 업계가 망설이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권리이고, 권리는 일관성과 재현성 없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세 갈래 길, 그리고 각각의 벽

AX를 시도하는 IP 조직은 보통 세 갈래 앞에 섭니다.

첫 번째는 직접 구축입니다. 사내 인프라 위에 IP 전용 AI 시스템을 직접 설계해 올리는 길입니다. 데이터 통제와 보안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IP와 AI를 동시에 깊이 이해하는 인력이 필요하고, PoC에서 실운영까지 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프로젝트 자체가 흐지부지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봤습니다. 시작은 가장 야심차지만 완주율이 가장 낮습니다.
두 번째는 범용 AI의 활용입니다. 친숙한 생성형 AI 서비스를 IP 업무 보조 도구로 쓰는 방식입니다. 도입이 빠르고 부담이 낮아 개인 단위에서는 효과를 봅니다. 그러나 특허 도메인의 기술적 맥락을 정밀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검색의 재현성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데이터 보안과 학습 이슈로 인해 조직 차원에서 공식 도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참고용으로는 쓸 수 있되, 판단의 근거로는 올리기 어렵다"는 현장의 반응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세 번째 길은 이번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영역입니다. 특허 도메인 지식이 학습된 모델을, 폐쇄된 환경에서, 검증 가능한 검색 흐름 위에 얹어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이 길은 첫 번째 길의 비용 부담과 두 번째 길의 신뢰 한계를 동시에 우회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 조직이 익숙해진 일하는 방식을 정직하게 다시 짜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도구를 도입하는 일이 아니라, 업무의 단위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갈래 앞에서 어떤 조직은 멈춰 있고, 어떤 조직은 이미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그 한 발의 차이가 1년 뒤에 어떤 격차로 벌어지는지, 우리는 현장에서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먼저 움직인 조직과, 아직 멈춰 있는 조직

변리사 한두 명이 사내 검색·요약 흐름을 바꿔놓고 그것이 사무소 전체로 번지는 데 6개월이 걸리지 않은 사례가 있습니다. 반대로, 1년 넘게 TF만 돌리고 한 줄의 운영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 사례도 있습니다. 둘을 가른 것은 예산이 아니었고, 인력 규모도 아니었습니다. ‘AX의 단위를 무엇으로 잡았는가’의 차이였습니다.
전자는 '하나의 업무 흐름’을 단위로 잡았습니다. 선행기술 조사 한 건, 의견서 검토 한 건. 단위가 작으니 결과가 빨리 보였고, 결과가 보이니 다음 단위로 넘어갈 명분이 생겼습니다. 후자는 '조직 전체’를 단위로 잡았습니다. 단위가 크니 의사결정이 무거워졌고, 무거워지니 첫 발이 늦어졌으며, 늦어지는 동안 동료 사무소가 먼저 갔습니다.
다음 회에서는 이 단위의 차이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거창한 디지털 전환 선언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 회의실에서 시작할 수 있는 첫 단위가 무엇인지를 함께 들여다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1년 뒤 당신의 사무소가 "우리 AX 마쳤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이겠습니까. 도구 몇 개를 도입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같은 일을 같은 품질로 100명이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뜻입니까. 이 시리즈가 그 차이를 분명히 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회 예고

다음 글에서는 IP AX의 세 번째 길. 도메인 특화 모델이 실제 조직에 정착되는 운영 모델, 그리고 그 성과를 어떤 지표로 측정해야 하는가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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