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지식재산뉴스에 기고한 워트인텔리전스 윤정호 대표의 글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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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정호 (워트인텔리전스 대표이사 변리사·미국변호사·지식재산의 룰을 바꾸는 설계자) 워트인텔리전스를 창업해 IP 데이터 인프라(키워트, keywert)와 AI 기술을 결합한 인텔리전스 플랫폼(keywert insight)을 만들고 있습니다. 3,000여 곳의 기업·기관과 함께한 경험과 1억 7천만 건 규모의 특허 원문 정제 과정에서 본 IP 산업의 변화를 이 시리즈에 담습니다.
지난 세 번의 글이 나가고 나서 사무소 대표님들로부터 몇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 가장 자주 받는 질문 하나에 대해 오늘 말씀 드리려 합니다.
“AI 도구는 이미 시장에 여러 개 나와 있고 우리 사무소도 대부분 쓰고 있는데, 왜 우리 사무소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상용 특허 검색 도구는 오래전부터 사무소마다 자기 방식으로 다루어져 왔고, 최근 이삼 년 사이에는 대화형 AI 도구도 사무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파트너 열 명이 넘는 대형 사무소든 대표 변리사 혼자 운영하시는 1인 사무소든, AI 도구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무소를 찾기가 오히려 어려운 것이 지금의 풍경입니다. 도구가 없어서 사무소가 안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도구는 있는데 사무소가 안 달라진다는 것이 지금 이 산업이 안고 있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이 답해 드립니다. 도구는 사무소가 이미 하고 있던 일을 조금 빠르게 만들어줍니다. 검색이 빨라지고, 문헌 정리가 빨라지고, 초안이 빨라집니다. 이 빨라짐은 실무자에게 도움이 되고, 그래서 대부분의 대표님들이 도구를 도입하신 뒤에 실무자들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십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 동안 특허업 전체가 함께 겪어온 변화입니다. 그런데 사무소가 편해지는 것과 사무소가 달라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도구는 사무소가 편해지는 데는 유효한데, 사무소가 다른 사무소가 되는 데는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사무소가 다른 사무소가 되려면, 사무소가 무엇을 파는 사무소인가에 대한 답이 달라져야 합니다.
특허 사무소가 지금까지 팔아온 것은 문서 한 편에 담긴 변리사의 실력이었습니다. 이 실력의 값이 명세서 한 편, 의견서 한 편, 심판청구서 한 편의 값을 정해왔고, 이 값이 사무소를 굴려왔습니다. 이 방식은 앞으로도 오래 유효할 것입니다. 다만 지난 몇 년 사이에 대기업 사내 IP 부서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이 실력 위에 하나가 더 붙기 시작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사무소가 우리 회사와 오랫동안 일하면서 쌓아온 것을 사무소 안에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 관심은 아직 공식 평가 항목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무소를 오래 지켜본 사내 IP 담당자와 대화하다 보면, 이 관심이 대리인 사무소를 볼 때 이미 조용히 쓰이고 있다는 것이 짐작됩니다. 이 관심이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사무소를 고르는 기준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여기서 사무소가 마주하는 질문이 나옵니다. 사무소가 지금까지 관리해온 것은 사건 파일, 등록 이력, 그리고 실무자 개인의 실력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무소가 오랫동안 잘 관리해온 것들입니다. 다만 이 세 가지 위에 사무소가 관리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건 하나에 이르기까지 사무소 안에서 오간 판단, 실무자가 도구와 함께 만들어낸 검토의 흐름, 클라이언트와 주고받은 대화의 축적. 이런 것들이 사무소 안에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가가 앞으로의 사무소를 조금씩 다른 사무소로 만듭니다. 지금 이 시점을 한 문장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AI 도구가 사무소를 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소가 관리하는 대상이 무엇이냐가 사무소를 달라지게 합니다. 도구는 그 뒤에 옵니다.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 키워트가 지난 몇 년 동안 사무소들과 실제로 일해오면서 반복해서 확인한 것이 이 문장이었기 때문입니다. AI 도구를 도입하신 사무소는 이미 많습니다. 다만 그 도구가 사무소를 실제로 다른 사무소로 만든 곳은 도구를 먼저 결정하신 사무소가 아니라, 사무소가 관리할 대상을 먼저 다시 정하신 곳들이었습니다. 이 순서의 차이가 지난 몇 년 동안 저희가 시장에서 배운 것의 전부라고 해도 됩니다. 한국의 특허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번의 이행을 자기 리듬으로 통과해왔습니다. 종이에서 전자로, 국내 중심에서 해외 대응으로. 각각의 이행에서 사무소는 밖에서 재촉받아 움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필요를 인식하고 자기 속도로 움직였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행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의 이행은 도구를 도입하시는 결정이 아니라, 사무소가 무엇을 관리할 것인가를 다시 정하시는 결정이 먼저 놓여야 하는 이행이라는 점이 지난 이행들과 다릅니다.
AI 도구는 이미 여러분의 사무소 안에 있습니다. 다만 그 도구가 사무소를 달라지게 만들지는 사무소가 무엇을 관리하기로 결정하시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결정이 사무소마다 다른 시점에 이루어질 것이고, 그 시점의 차이가 앞으로 몇 년 이 산업의 다음 국면을 이야기하는 시작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